테세우스 패러독스 (한국 소설)
장르 : SF, 철학
2025년 9월 25일 발행된 이경희 작가의 소설. 가락시장에서 술 마시는 도중에 친구가 읽어보라고 줘서 읽게 되었다.
다 읽고 후기를 보니 2019년에 출간됐던 기존 「테세우스의 배」 라는 작품을 리뉴얼해서 내놓은 듯.
스토리는 주인공 석진환과 그의 여동생 석미진이 트라이플래닛 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싸우는 다툼이 큰 줄기이다. 사고를 당한 석진환의 육신이 기계로 대체되는 와중에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 를 독자들에게 던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은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기반으로, 배가 아닌 인간을 통해 사고실험을 진행한다. 아마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초반부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앞으로의 스토리가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이야기가 3부로 나뉜 이유는 인간이 본인임을 구성하는 요소가 연속성(Continuum)이냐? 육신(Body)이냐? 기억(Memory)이냐? 를 질문으로 던지기 때문. 다만 표지와 목차, 이야기가 진행되는 복선을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세 토막을 내놓을 줄이야.
최근 읽었던 국내 소설 중에서는 가장 잘 읽히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거운 주제 속에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협과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전개가 꽤 즐거웠다.
책 뒤의 추천사에서는 출판사 대표가 첫 장면에 대해 매우 놀라워하고 있는데, 사실 여기서는 예전에 봤던 영화 「하드코어 헨리」 가 플래시백 되더라. 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아마 어느 정도 유사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불평을 해보자면, 우선 플래닛전자라는 기업의 최고위 경영자 자리에 올라 있는 주인공이 가장 바보처럼 나오는 장면이 납득가지 않는다. 현대로 따지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나,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과 같은 급일텐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팀의 보고를 받는 직책의 사람이 뒷세계인 ‘서큐버스의 몽정’에 있는 설비들을 보고 놀라거나, 여울과 박사가 흥정하는 대화를 못 알아듣고 있다거나 하는 장면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계 규모의 초거대 기업 경영권 다툼이라는 암투 속에서 살아왔던 주인공치고 다소 순진한 것도 문제다. 주인공의 동생 석미진은 군대에 병기까지 준비해놓는데, 정작 주인공은 자아분열 대책만 세워놓고 심지어는 그것을 통제하는 측근의 배신조차 상정을 하지 않았다. 결과는 잘 된 일이지만 글쎄, 운이 조금이라도 없었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런 미묘한 불평들을 제쳐두더라고,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상상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즐거운 과정이었다. 같은 책을 읽은 뒤 토론을 해 본다면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벌써부터 다양한 질문거리가 떠오른다.
나는 석진환인가, 석미진인가, 현석인가, 여울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인간이 죽음을 정복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죽음의 정복에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기술인가, 인간인가 혹은 다른 무언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