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체

군체 (한국 영화)
장르 : SF, 좀비, 액션, 공포, 스릴러, 범죄, 피카레스크

2026년 5월 15일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영화.

또 이 말을 해야겠지만, 영화관에서 보기 시작한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영화관을 뛰쳐나오고 싶어졌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이후 오랫만에 느껴보는 쓰레기같은 영화에 대한 비통, 비애, 좌절, 절망, 공포, 혼란, 역겨움.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순수하게 영화라는 장르에 절망해서 쏟아낼 것만 같은 구토감.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데에 대한 숭고한 두려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이 개미 과학 다큐멘터리에서 우연히 본 ‘앤트밀’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만든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칭찬할 만한 것은 좀비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의 몸짓과 연기, 그리고 분장이다. 그 멋진 연기자들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감히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즉, 이 영화의 가장 큰 오점은 감독인 셈이다.

시작하자마자 비난만 퍼 부어서 미안하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보자.

이야기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회사에서 팽 당한 서영철, 그리고 바른 말만 하는 주인공 권세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이에 하반신 마비 누나 최현희와 남동생 한규성, 그리고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 한 명과 주동자 두 명이 있긴 하다. 학생, 경찰, 그리고 그 외 인물들은 대부분 등장은 하는데 영화의 진행에 큰 의미는 없는, 약간 양념치킨을 시켰는데 우연히 섞여 들어온 추가 양념소스마냥 의미 없는 존재이므로 무시해도 된다.

주된 스토리는 인간을 집단 조종되는 군체(좀비 겸 개미 겸 황색망사점균 등등)가 되게 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테러이다. 백화점이 군체 좀비에게 점거당한 상황에서 위에 얘기한 생존자들과 테러 주동자인 서영철, 그리고 테러를 대응하는 국가의 모습을 군상극으로 그린다.

영화를 하나하나 까고 보면 글이 참 길어질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아서 영화를 보고 이틀 정도 삭힌 뒤에 글을 적었다. 하지만 그래도 화가 나서 적긴 적어야겠다.

우선 서영철의 연령대가 이상하다. 서영철은 학생 시절(중학생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학생에게 신고를 당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아버지의 말 “소통의 불완전함” 에 꽂혀 군체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한다. 근데 중학생이 성장해서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할 국내 최고 수준의 바이오 기업인 《체인스 바이오》에 들어가서 CEO와 독대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10년에서 15년 이내인데, 그럼 기껏해야 서영철은 사회초년생의 나이이다.

뭐 천재성이 넘쳐서 그렇다고 치자. 근데 서영철의 행동 양식도 이상하다. 작중에서 서영철은 기껏해야 백화점 하나를 정복하는데 그쳤는데, 서영철의 목적인 자신을 팽한 회사에 대한 복수,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권세정 교수에 대한 복수였다면 바이러스를 컨퍼런스 도중에 뿌렸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의 진화를 위한 테러였다면 백화점에서 하면 안 됐고. 경찰을 부르기까지 한 것은 아주 언어도단이다. 어느 쪽이든 좀비 바이러스를 단독으로 완성할 수준의 두뇌를 가지고 이따위 방식으로 테러도, 복수도, 진화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은 아주 머저리같은 개연성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주인공 얘기만 하니까, 왕따 당하는 학생으로 잠깐 넘어가보자. 이 학생의 행동 방식이 제일 이상하다. 왕따 당해서 백화점에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다 주세요~ 라는 말을 듣고도 주동자들을 계속해서 돕고 살린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에 어떻게 침착하냐?” 는 말에 “너희랑 있던 게 더 지옥이었으니까” 라고 뱉는다. 캬. 감독의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선민의식이 들어간 캐릭터인건지, 대체 왜 있어야 할지 모를 캐릭터를 꼽아놓고 가장 힘든 순간에 일침을 날리는데, 이게 이 영화와 스토리와 캐릭터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누가 좀비 영화를 보러 와서 학교폭력은 나빠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나? 이 캐릭터가 영화의 흐름을 끊어먹는 것 이외에 어느 역할을 하나? 좀비물에 꼭 있어야 할 호들갑 떨며 온갖 발암 플레이는 다 저지르는 캐릭터를 넣고 싶었으면 그냥 넣어라! 왜 거기다가 학교폭력 서사까지 추가를 해서 개연성 없는 구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모든 발암 역할은 남자들이 하고 모든 캐리는 여자들이 하는 개연성 없는 몰아주기도 문제다. 좀비를 보는 것 만으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까지 관통하는(아무 증거도 없었는데 말이다) 권세정 교수, 좀비를 조종할 수 있는 숙주가 옆에 있는데도 아군 위치를 말로 뱉는 (심지어 말 하지 말고 문자로 소통하자고 했음에도) 트롤링에 배신당해 죽어가면서도 동생을 살리기 위해 브리핑하는 누나, 뜬금없이 작전통제실에서 다 도망가는데 CCTV 보며 브리핑하는 전 남편의 현 아내까지. 왕따 주동자이던 여학생, 그리고 권세정의 전남편을 예외로 두면 모든 여자 캐릭터는 위너고 모든 남자 캐릭터는 루저로 나온다는거다.

좀비들의 진화에 대한 설득력도 문제다. 좀비가 진화를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근데 눈으로 보고 쫓던 좀비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됐다고 눈을 안 쓰는건 퇴화지 진화가 아니다. 눈도 쓰고 코도 써야지. 그리고 좀비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던 서영철이 굳이 좀비를 초반부에 방치해두는 것도 설득력이 없고, 앤트밀은 뭐 당연히 어이가 없다. 좀비는 그냥 마네킹만 보고도 달려드는데 그 주변을 왜 빙글빙글 돌고 있는가?

등장인물의 낮은 지능도 문제다. 서영철이 백신이라 확보했으면 눈부터 뽑고, 고막은 찢고, 코는 막고, 혀는 잘랐어야 했다. 서영철이 좀비를 조종하는데 정보와 작전은 친절하게 계속 공유해주며, 심지어 자신들이 배신해서 누나가 죽었는데도 동생이 “니네 다 죽여버리겠다” 고 선언한 단체 대화방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지능이 낮은 건지 정신병에 걸린 건지 의심을 해 봐야 할 수준이었다.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해야 할 말은 참지 않고 해라”, “소통의 오류는 인류의 진화의 방해물이다”, “학교폭력은 나쁘다”, “남매의 서로를 위한 사랑”, “보신만을 좇는 무능한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과연 이 영화에 주제의식이 있긴 할까?

이상한 스토리, 망한 캐릭터성, 기괴한 결말, 뭘 잘했다고 2편의 떡밥을 집어넣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감독까지.

이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하기도 싫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보다 더 긴 시간을 이 글을 쓰는 데 기울였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

아래는 내가 본 영화 티켓. 한 장에 1만 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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