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스러운 피 – 김행숙

성스러운 피 (한국 시)
장르 : 시, 영화

시집 「사춘기」 에 등재된 김행숙 시인의 시이다.

알렉산더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1989년도 영화, 「성스러운 피」 를 중심으로 씌여진 듯 하다. 해당 영화를 아직 본 적이 없어, 보고 나서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이해가 안 되어 시를 한 번 읽고, 그 후에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를 읽었다.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영화 「성스러운 피」 에서는 코끼리가 한 마리 나온다. 서커스단에서 일하다가, 코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며 이윽고 죽는다. 죽은 코끼리의 시체는 빈민가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관중처럼 둘러 싸 있던 빈민들이 코끼리의 뜯어 나눠 가져간다.

이 시에 등장하는 아기 코끼리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혹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엄마 코끼리가 서커스단에서 노동만 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다만 밖을 보지 못한 아기 코끼리는 엄마 코끼리의 피를 계속해서 뿌린다. 엄마의 속이 텅 빌 때까지. 닫힌 세상에서 아기 코끼리의 세계란 엄마의 뱃속이 전부고, 이제는 텅 비어 버렸지만 그것이 유일한 천국이다.

이 시에서 보이는 인간은 무섭다. 서커스단에서 노동을 통해 죽음에 다다른 코끼리는 쓸모없는 피를 흩뿌리고 죽는다. 코끼리의 삶은 사투였지만, 인간들의 쾌락은 코끼리에겐 두려움일 것이다.

하지만 천국일 것이다. 코끼리는 그 밖의 세상은 모르기 때문에.

아래는 시 전문이다.

성스러운 피

      – 저 정도 양이라면 죽은 사람 세 명은 살리겠어.
      – 당신은 항상 양만 따지는군. 코피로서 대단하긴 하지만 성스러운 미신이 사라진 시대에 저건 쓸모없는 피야.

 코피를 흘리는 코끼리* 속에는
 펌프질을 하는 아기 코끼리가 있다. 세상에선 어떤 노동을 통해 죽음에 다다르나요? 엄마, 나는 나의 천국에서 일하다 죽겠어요.

 코끼리의 귀가 펄럭거렸다. 거대한 몸이 헐렁헐렁해진다.
 엄마, 우린 청소를 하는 거에요. 엄마의 코는 훌륭한 호스에요. 좀더 힘을 내서 뿌리세요.

 코끼리의 피가 원형 경기장을 만든다. 피가 불러 모은 관중들.
 우리의 死鬪는 같은 방향이니 평화로워요. 그런데 엄마, 저들의 오르가슴이 무서워요.

 코끼리의 가죽은 축, 축, 걸쳐져 있다. 코끼리의 외관을 받치고 있는 뼈대는 늠름하다.
 엄마, 여기는 비었어요. 약간 춥고 배는 고프지만 노동은 즐거웠어요. 엄마, 여기는 여전히 나의 천국이에요.

* 알렉산더 조도로프스키의 영화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

감수성이라곤 하등 없는 내가 시를 읽으면서 이런 글을 쓰는건 어찌 보면 늦게 온 중2병인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보고 부끄러워할 것도 같다.

댓글 남기기